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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 퍼즐 500피스] 밤의 카페 테라스, 막막한 초보자에게!

by 일라이자 2021. 11. 23.

태어나서 처음 해봤다, 직소 퍼즐.

직소(jigsaw), 즉, 그림 맞추기 퍼즐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나 한가로이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 번잡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그림 맞추기를 하는 게 더 좋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샀다.

'처음 하는 거니까 좀 쉬운 걸로 해야지' 하고는 500피스를 선택하고, 그중에서 그림을 골라보니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가 그나마 덜 어려워 보였다.

내 기준은, 색상이 여러 가지인 게 조각 맞추기 쉬울 것 같았다. 한 가지 색이나 비슷한 계열의 색이 큰 비중을 차지한 그림은 조각 맞추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흐 작품 중에서 밤의 카페 테라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길거리 바닥 맞추는 게 복잡할 것 같긴 했지만 그 외에는 해볼 만하게 보여서 선택했다.  

 

 

주말에 좀 시간 나면 해야지 하고는,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책상 한 켠에 놓인 퍼즐 상자를 보며 언제 하지, 스트레스만 더 쌓여갔다.  

그래서 하루 날 잡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아예 책상 한편에 펼쳐놓고 오며 가며 틈틈이 하기로 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했다.

우선 색상별로 조각들을 모았다. 그다음엔 아무거나 집고 하나씩 다른 조각들을 그에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끝도 없이 실패했다.

그리고, 미처 생각못한 게 있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작업 공간을 확보하라! 

 

어처구니없게도 난 상자가 작아서, 완성되면 그 정도 그림 크기일 거라 생각했다. 사이즈 380 x 520mm라고 쓰여있는데도 말이다! 바보, 바보...  

언제 완성될 지도 모르는데 방바닥에 두고 할 수도 없고, 책상 말고는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그 한 켠에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색상별로 모아둔 조각들을 다 펼쳐놓기엔 작아서 몇 가지 색상의 조각들만 놔두고 나머지는 일단 치웠다. 그리고 폼보드를 사서 크기에 맞게 자르고, 그 위에서 했다. 그러면 전체 완성된 퍼즐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액자를 사려고 했는데 동네에선 그 크기의 액자를 살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몇 만원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다. 이렇게 클 줄 몰랐다. 500피스가 이 정도 크기인데 1000피스는? 욕심 안부리고 500피스 사길 잘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했다. 

 

어디부터 채우지?

색이 많아 보이는 노란 카페 벽과 보랏빛 밤하늘 중심으로 조각을 맞추려고 했는데, 여전히 속도가 더뎠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맞나? 나만 이렇게 헤매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테두리부터 맞춰라! 

 

테두리를 맞추려면 조각의 한 단면이 평평해야 한다! 그런 것들만 죽 모아서 이어갔다. 전보단 훨씬 쉽게 맞춰져 갔다.

하지만 조각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거 불량인가? 혹시 내가 조각 몇 개를 바닥에 흘렸나?'

주위를 훑어보며 영 못찾겠는 부분은 놔두고 테두리에서부터 하나씩 조각을 맞춰 갔다. 

폼포드 위에서 하니까 테두리 맞추기도 좋다.

 

 

 

 믿음이 필요하다! 

 

불량 아니다! 500조각 맞다!

분명히 이 조각이 여기 맞긴 하는데, 이것 말고는 없는데, 딱 들어맞진 않고 억지로 맞춰진 것 같다. 이거 하나만 불량인가? 그러다 이거 500조각 아니고 499조각 아니야? 불신이 점점 커져간다.

액자를 주문하려고 했다. 이렇게 힘들게 작업하니 돈 좀 들여 멋지게 액자에 넣어야지. 그런데 불신이 커지니 액자 주문을 포기했다. 샀다가 퍼즐 불량으로 한두 조각 빠진 채 액자에 넣게 될까 봐.

그래서 불량은 불량대로 놔두고, 맞춰지는 것만 일단 죽 맞춰보자. 아쉽지만 어차피 처음 하는 거니까 연습 삼아 한다고 생각하자, 이런 마음으로 계속 맞춰갔다.

그런데 불량이 너무 많다. 한두 개쯤은 그러려니 하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많을까?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조각이 맞춰진다고? 혹시나 해서 나처럼 불량을 호소한 사람이 또 있을까 검색도 해봤다.

그러다 점점 끝이 보이며 몇 조각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랬더니 영 보이지 않던 조각들이 갑자기 보이고, 억지로 맞춰졌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와~~~ 완성!!!

역시 불량품이 아니었어. 내가 잘못 끼운 거였어.

조각들이 몇 개 안남았을 때, 정말 이 자리가 제 자리인 줄만 알았던 조각들이 더 꼭 들어맞는 조각들로 채워지는 걸 보았을 때, 그때 느꼈던 그 신기함과 환희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유약 바르기 

 

상자에 들어있던 퍼즐전용 유액을 같이 들어있던 종이 밀대로 이제 바르면 된다. 끈적거리는 유액을 한 군데 쏟지 말고 전체적으로 뿌리고 골고루 스며들도록 밀대로 밀어준다. 두 번 발랐다. 유액이 광택 효과로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하고, 조각들이 떨어지지 않게 밀착시켜준다. 방바닥에 신문지 깔고 했다.

 

 

여기까지 하고 퍼뜩 생각이 났다. 

아, 이걸 또 하고 싶은데, 이제 믿음도 생겼겠다, 퍼즐 맞추기 재미도 알게 됐고, 다시 하면 금세할 것 같은데...

하지만 늦었다. 유액을 발라서 조각들을 뗄 수가 없다. 

이제 완성했으니 다시 액자를 살까 고민하다, 폼보드를 한 장 더 붙이고 완성된 퍼즐도 떨어지지 않게 폼보드에 붙였다.  당장 500피스에 맞는 액자를 덜컥 사버릴 용기가 없었다. 나중에 1000피스 하게 될 수도 있지 않나. 퍼즐 할 때마다 액자를 사는 것도 문제고, 이렇게 생각보다 큰 액자를 걸 빈 벽도 없다.

 

액자 대신 폼보드 두 장을 붙였다.

 

마침, 책상을 마주한 창가쪽 좁은 벽이 더러운데 이걸 가릴 겸 꼭꼬핀을 이용해서 걸기로 했다. 꼭꼬핀에 꽂으려니 구멍이 필요해서 폼보드 뒷면에 구멍을 뚫었더니 그냥은 꽂아지지 않아 집게를 꽂아 핀에 걸었다. 벽과 그림의 폭이 딱이다.

 

 

 

조잡한가?

책상에 두고 오며가며 몇 주에 걸쳐 조금씩 완성시켜나간 이 퍼즐을 보면, 감격과 해냈다는 뿌듯함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작품에 도전해볼까? 그런데 완성되면 이번엔 어디에 걸지? 벽에 걸지 않고 전선 많은 벽 아래 두는 방법도 있다.

 

 

 퍼즐을 계속 즐기려면...당근^^ 

 

주위 퍼즐하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 친구는 따로 완성품을 벽에 걸진 않고, 유약도 바르지 않고, 완성된 조각을 다시 흐트러뜨려서 당근마켓을 통해 판다고 한다. 그러고는 역시 당근마켓을 통해 다른 걸로 사서 퍼즐을 계속 즐긴다고 한다. 아 그런 방법도 있구나.

퍼즐이 재미있긴 하지만, 쉽게 도전할 일은 아니다. 조각을 빨리 맞추는 비법은 없다.

끈기, 인내가 필요할 뿐. 집중해서 해도 며칠이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퍼즐은 심란할 때,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럴 때 하기에 제격인 것 같다.

완성품을 보며 자신감을 찾고 희열을 느끼는 그 과정과 감정이 중요한 것 같다.

책상 너머 벽에 걸린 내 첫 작품을 볼 때마다 미소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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